정말 오랜만에 봄을 시골집에서 맞이한다. 약 22년전 집에서 살던 때 처럼 봄이 오고 냉이와 달래를 캔다. 밭을 만들고 감자를 심는다. 봄비가 내리니 건너산에 물오리나무 물이 오르고 산수유 색깔이 진하게 보인다. 물이 떨어져 처마밑에 물소리가 들린다. 엄마의 세월 흘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봄비소리에 몸은 일으키지 않고 따뜻한 온돌방에서 뒹굴뒹굴한다. 여행에서의 그 느낌이 살아나지 않는다. 익숙한 곳의 익숙한 봄이지만 매우 오랜만이라 이것도 여행같다는 생각이 조금 들 뿐이다. 다만 그가 없다. 봄이 오긴하지만 하루종일 틀어져 있는 텔레비젼에는 코로나 이야기만 나온다 . 봄비가 온다. 마음이 일렁인다. 그는 잘 지내려나?
서울을 떠나 고향집을 향했다 . 여행가기전 없앤 전화번호 개통되지 않는 전화 여행때와 같이 와이파이 하이에나 마냥 공짜 와이파이 존을 찾는다. 한국은 퍼블릭와이파이가 많아서 좋았다. 출국전에도 마지막에 먹은 순대국을 먹고 커피한잔을 했다 6시간 차이가 나는 그가있는곳과의 연결은 쉽지않다 나는 시차적응으로 잠을 못자 버스에서 죽은듯이 잤다. 일어나서는 그는 뭐할시간인지? 밥은 좀 챙겨 먹었는지? 기분은 괜찮은지 궁금해 본다. 정류장에서 부모님을 만나 오랜만의 회후를 나누었다. 걱정 많은 우리엄마한테 걱정 끼친 마음을 꽃으로 전했다. 집으로가는 이길이 또 익숙하며 낯설고 그가 없다는 것이 순간순간 자각된다 와이파이가 하나도 없는 우리집은 그와 연결할수가 없다 그 밤은 또 날밤을 샌다 아침에 우리의 짐이 있는..

동력이 상실한 채 외딴 곳에 불시착한 조종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뭘 해도 사실 기분이 나아지지 않지만 뭐라도 해야겠기에 아침에 길을 나섰다. 날씨는 우중충했고 가느다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빵집에서 빵을 사서 살짝 비를 맞으며 우걱우걱 씹으며 도시를 걸었다. 스산한 기운에다가 이따금 마주치는 사람들의 시선은 차갑고 무표정했다. 눈만 마주쳐도 웃으며 인사해주고 발걸음만 떼어도 어딜가냐고 묻던 아시아의 따뜻함이 오늘 따라 그립다. 언젠가 사람이 지독히 그리워지면 나는 다시 아시아를 찾게 되겠지. 으르간드 다리를 중심으로 한 바퀴 산책을 했다. 아직 상점들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무기력은 쉽게 몸도 지치게 하는지 한 시간만 걸어도 피곤했다. 다시 숙소로 와서 누웠다. 오후 2시까지 늘어져 있다보니 창밖으..

무기력하고 공허하다.메뚜기가 떠난 빈자리는 적막하고 황량했다.며칠간 다녔던 낯선 거리의 모습들이 오늘따라 더 낯설다. 혼자 여행하는 것보다 함께 여행하는 것이 두 배쯤 힘들었고함께 여행하다가 혼자가 되는 것은 그보다 열 배쯤 더 힘들다. 시내를 목적 없이 걸었다. 하늘도 우중충하다.습관적으로 뒤를 돌아본다.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메뚜기는 항상 서너 발자국 뒤에 있었다.우리는 결국 그 서너 발자국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부르사로 떠나기로 했다.메뚜기의 모습이 남아있는 이스탄불을 서둘러 떠나고 싶었다. 탁심광장에서 메트로를 타고 Yenikapi 역에서 내려서선착장까지 10여분을 걸었다. 부르사 가는 배는 오후 3시에나 있다고 했다.2시간 30분을 대합실에 멍하게 앉아 기다렸다. 부르사 가는 페리는 큰 배낭을..

얼룩말과 포옹을 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우린 서로 잡지 못했다. 왜냐면 지금 남은들 우린 지금 서로 거리가 필요하다는걸 무언으로 합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잡지도 남지도 않고 큰 마음을 먹었다. 서로 엄청 두려워 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엉엉 울뻔했는데 옆자리에 앉은 이라크 친구가 계속 말을 걸어줘서 엉엉우는 신파는 면했다. 공항버스가 출발하고 밖에서 배웅하던 얼룩말은 썬텐이 심한 버스안의 나를 찾지 못해 두리번 거린다. 또 울었다. 이미 그도 많이 운 얼굴이다. 한번씩 눈물이 올라오고 올라오곤 했다. 시간이 좀 남아서 커피를 한잔 하고 짐을 보냈다. 짐을 보내며 이제 돌이키지 못한다 생각했다. 대기를 하다가.비행기를 타고는 또 울었다. 순간 순간 울컥울컥 하는건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비행..
숙소를 한 번 더 옮겼다.이 와중에도 몇 만원 아끼겠다고 저렴한 숙소로 옮긴 내 모습이 우스웠다. 체크인은 오후 2시고메뚜기는 오후 3시쯤 떠난다고 했다.탁심 광장에 멍하게 앉아 있었다. 메뚜기는 잠깐 돌아다니다가커피를 사 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메뚜기의 가지 말까라는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조금 더 여유로운 사람이 되고메뚜기는 조금 더 독립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로가 더 건강해지기 위해 떨어질 필요는 있다. 지금껏 여행하면서 겪은 트러블은해결하지 않고 그냥 묻어 두었던 것 같다. 그것이 곪고 곪아서 이 지경이 된 것이다. 공항버스 정류장 근처 한식당에서마지막 식사를 하고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갔다.메뚜기가 버스에 오르자내내 참았던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어른이 되어서길거리 한복판에서 그..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인 메뚜기는 바로 내일 저녁 한국 가는 비행기를 발권했다. 메뚜기는 바람을 쐬러 오전부터 나갔고 아무 의욕이 없는 나는 호텔 방 안에서 처박혀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다. 한참만에 돌아온 메뚜기는 그동안 사고 싶었던 청바지며 각종 기념품을 손에 들고 왔다. 그제야 이별이 실감이 났다. 메뚜기가 사 온 USB에 그동안의 사진을 담아줬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힘들고 짜증 나는 순간들도 있었고 서로 화내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사진 속 얼굴은 한결같이 웃기만 했다. 우리는 하루 종일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