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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세계여행 D+203 "ABC 트레킹 5일차"

4번얼룩말 2019. 12. 23. 17:40

루트 : ABC - MBC - 데우랄리 - 히말라야 - 도반 - 뱀부

 

ABC의 밤은 너무나도 추웠다.

침낭을 있는 힘껏 끌어당기고 자도 옆으로 한기가 밀려왔다.

물병에 받아 놓은 따뜻한 물을 껴안고 자도 잠시 뿐이었다.

 

날이 밝는 대로 일찍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신은 결코 이 아름다운 곳에

오래 머물도록 허락하지 않을 모양이다.

 

아침 6시 30분.

서서히 설산이 밝아온다.

햇살도 히말라야 산맥을 넘으려면 꽤 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우리는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ABC 주변의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어디를 찍어도 그림 같은 풍경.

햇살을 받은 안나푸르나 설산 위에 뜬 구름이

마치 불사조처럼 보여서 사진을 찍는다.

이곳을 수호하는 수호신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히말라야 창공을 자유롭게 활강하는 독수리와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조금만 덜 추웠더라면 

조금만 더 머물고 싶은

놓치고 싶지 않은 풍경들이다.

이곳에 나의 심장을 조금 덜어낸다.  

 

이곳을 떠나도 

나는 언제나 늘 히말라야를 그리워하며 살겠지.

두고 온 심장 한 조각이 늘 그곳에 살아 숨 쉬고 있을 테니.

 

뱀부까지 가려면 서둘러서 걸어야 한다.

계속 내리막 길이지만

길이 미끄럽고, 때로는 질퍽하다.

하산길이 등산길보다 훨씬 조심해야 한다.

 

발걸음 빠른 민하 씨는 제 속도를 따라가고

우리는 느릿느릿 우리의 속도로 걸어간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온 몸의 힘을 주고 걷는다.

 

올라올 때는 힘들어서 

아무 생각 없이 걸어왔는데

내려올 때 보니 

내가 언제 이렇게 많은 걸음을 걸었었나 싶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이 세상에 헛된 걸음은 없다고

 

지금의 나는 

수많은 실패와 좌절, 후회와 반성으로 이뤄진 계단이다.

그것들이 비록 만족스럽지 않을 지라도

하나를 건너뛰고 다음 스텝으로 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모든 순간순간들의 합이 모여서

인생이라는 거대한 산을 만든 것이라고

 

그러므로 이 세상에 헛된 걸음은 없다.

또한 지름길도 없다.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는 우직함이

가장 빠르게 , 그리고 바르게 인생이라는 산을 오르는 방법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오후 4시에 뱀부에 도착했다.

느린 걸음이지만 8시간이 넘게 산행을 해서 피곤했다.

 

뱀부에서 샤워를 하며 2일간 씻지 못했던

찝찝함을 날려버렸다.

 

ABC에서 있다가 뱀부에 도착하니 날씨가 덥게 느껴졌다.

나는 침낭에서 속옷만 입은 채로

모처럼 숙면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