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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앙코르 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곧 가게 될 미얀마의 바간까지.
어쩌다 보니 상좌부 불교 성지순례가 되었다.
자연스레 불교뿐 아니라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종교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종교를 근간으로 만들어진 여러 건축물과 예술품들, 그것을 둘러싼 역사, 정치, 문화, 생활상.
숭고한 염원으로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사람들과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갈라진 수많은 분파들.
우리에게 숙제처럼 남겨진 진리와 사랑과 평화.
우리는 서양인 4명과 함께 새벽어둠 속을 질주하며 보로부두르 사원으로 향했다.
꽉 막힌 인도네시아의 교통체증에 내내 시달리다가 뻥 뚫린 도로를 고속 질주하니 묘한 쾌감이 밀려온다.
1시간을 달려 도착한 사원의 하늘에는 상현달이 밝게 빛나고 있었고, 밤하늘엔 별빛이 그득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보기 위해 속속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주말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다기에 서둘러 오늘로 잡은 것이다.
일출, 일몰을 굳이 보고 싶지 않다면 프람바난 사원과 통합 입장권을 끊으면 조금 저렴하다.
하지만 불교의 성지에선 왠지 일출을 봐줘야 할 것 같았다.
손전등 하나에 의지 한 채 계단을 올라간다.
욕계, 색계, 무색계를 차례로 올라가면 동트는 방향으로 명당을 차지한 사람들이 이미 기다리고 있다.
여명이 조금씩 밝아오면 하늘은 옅은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있는 저 너머의 산과 나무들은 한 폭의 진경산수화처럼 운치를 더해준다.
이윽고 해가 말갛게 올라오면 사람들의 탄성이 이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 찍기 바쁠 때 홀로 명상하던 서양인이 있었다.
그 모습이 나를 찌른다.
가끔 카메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한다.
여행의 주객이 전도된다고 느낄 때도 있다.
메뚜기가 그것을 보더니 이내 명상에 빠진다.
나는 고민을 했고, 메뚜기는 실행을 했다.
나는 다시없을 풍경을 눈에 담았고, 메뚜기는 다시 없을 풍경을 마음에 담았다.
언젠가 다시 떠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카메라도 휴대폰도 없이 가볍게 여행할 수 있을까?
집착을 덜어낼 수 있을까?
내려와서 간식으로 사둔 빵을 먹고 입구를 설렁설렁 걸으며 내려오니
우리를 태운 운전기사분께서 아침 먹으라고 하신다.
아까는 어두운 상태여서 입장권을 받아서 그냥 넣어버렸는데 조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줄거리를 찾아보지 않는 것처럼
여행을 하기 전에는 간단한 정보 외에는 타인의 여행기를 잘 안 읽는 편이다.
그래서 가끔 이런 머쓱한 상황이 온다.
오히려 여행을 하고 나서 그들의 여행기를 읽으면 공감도 되고
내가 미처 못봤던 부분도 알게 된다.
오전 8시. 한 시간을 달려 보로부두르를 빠져나와 다시 숙소 근처로 왔다.
서양인 4명은 여기서 내리고 우리 둘만 다시 프람바난 사원으로 갔다.
새벽잠을 설쳐 쏟아질 듯한 졸음이 계속 밀려왔다.
차라리 오전 투어만 하고 늘어지게 잠을 잔 다음 저녁 일몰 투어로 프람바난을 갈 것을 그랬다.
프롬바난 사원의 첫인상은 여기저기 복원에 분주한 모습이었으며 여기저기 널브러진 돌들이 가득했다.
언젠가 지진이 크게 일어났을 때 이곳도 피해를 입어 떨어진 조각들도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서 색즉시공이 떠올랐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허망하게 사라지기 마련이다.
인간에 의해, 자연재해에 의해 다소 빨라진 것 일뿐 어차피 정해진 수순이었다.
대자연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어쩌면 찰나에 불과할지도.
새벽부터 깨어 있었더니 정신이 몽롱하며, 햇볕은 뜨거웠다.
프롬바난 계단은 좁은데 사람들은 많고,
내부의 시바신이나 비슈누 신을 한 번 구경하려 하면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했다.
서늘한 그늘에서 잠시 쉬다가 숙소에 돌아와서 모자란 잠을 보충했다.
저녁 무렵 브로모 - 이젠 - 발리 가는 투어를 예약했다. 2박 3일 일정에 300만 IDR이었다.
브로모 가는 이동수단은 기차로 바꿨더니, 예상보다 지출이 늘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생각보다 지출이 많아서 배낭여행을 하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있다.
포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잘 구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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