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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
숙소에서 제셀톤 포인트까지 걸었다.
섬 투어로 떠나는 관광객들로 선착장은 북적였고,
한 명이라도 더 손님을 맞이하려는
여행사와 택시기사 각종 기념품 가게와 먹거리 상인들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넘쳐났다.
섬은 날씨가 맑을 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과 내일은 비 소식이 있다.
제셀톤에서 간단히 빵으로 요기를 한 다음 시내를 찬찬히 걸었다.
아지트로 삼은 카페에 들려서 책을 읽었다.
어릴 적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에 빠져 있던 때가 있었다.
오랜만에 그의 소설을 집어 들었다.
그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정확한 워딩은 아니다)은
고통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라고 쓰여있었다.
종종 마주하는 심리적 고통이 부디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늘이 어두웠지만 탄중아루 비치를 가보기로 했다.
그랩을 부를까 했는데 메뚜기가 걸어가자고 한다.
왕복 거의 9Km는 될 법 한데...
길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고,
중간에 큰 도로를 몇 번 건너는 것만 빼면 자전거 도로를 통해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한 시간 10분쯤 걸어서 탄중 아루 비치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으나
잔뜩 흐린 하늘은 일몰을 허락지 않았다.
수영하기에도 적합한 해변은 아니어서 아무도 수영하는 사람이 없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늘어서 있는 시장에서 옥수수 하나를 사서 먹으며
숙소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마고 센터에 와서 두부 요리를 먹고 잠시 쇼핑몰을 둘러본 사이
비가 억수 같이 쏟아 붓기 시작했다.
몸은 젖어도 괜찮지만 카메라는 보호해야 했기에
우비를 입고 숙소까지 잰걸음으로 갔다.
코타키나발루에서 장기 숙박을 예약했는데
다른 곳으로 가보고 싶은 변덕이 들었다.
나는 뭐든지 미리 준비해야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라서
항공권과 숙박시설을 미리 예약했는데 이런 경우 되려 내 발목을 잡았다.
어쩌면 여행지에서는 무계획으로 떠나는 즉흥적인 선택이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갑자기 계획을 바꿀 경우 마주 해야 할 수많은 선택과 판단들.
그것보다 더 나를 어지럽게 하는 것은
바꾼 선택이 최초의 선택보다 좋을 것이란 확신이 없다는 것에 침울했다.
나만의 동굴에 들어가 진실로 원하는 욕망은 무엇인지 찾으려 했다.
고요한 심연의 바닥을 치고 올라오면 마음도 머리도 명쾌해지는 나만의 루틴이다.
메뚜기는 동굴 속에 틀어박힌 내 모습을 못마땅해하며 자꾸 밝은 곳으로 끄집어낸다.
슬픔 따위는 집어치우라고 말하는 것 같다.
결국 펑 하고 터진다.
에니어그램 4번은 타인보다 더욱 예민하고 자주 슬픔에 빠진다.
어릴 적엔 그게 내 잘못인 줄 알았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지만 타인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조차
미안해해야 하는 삶을 살았고, 숨기고 감추며 가식적으로 눈치 보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잘 표현해 주었듯 슬픔은 저리 치워버려야 할 감정이 아닌 것이다.
그저 할 수 있는 위로는 충분히 기다리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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