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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게 침전된 마음 위로 혼탁한 부유물이 떠다닌다.
뭔지 모를 감정이 오전 내내 올라왔다.
그 감정이 뭔지 파악하려고 애쓰는 중에 메뚜기가 자꾸 물어본다.
그냥 넘어가도 좋으련만
적어도 내 감정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메뚜기는 그런 것을 못 견뎌하고 결국 말다툼으로 이어진다.
저녁을 먹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다소 풀린 듯하여
이제는 나의 감정을 역산해볼 차례다.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 봐야 할까.
어린 시절부터 나는 혼자에 익숙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혼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머리를 많이 써야 했고 , 그것은 나를 더욱 예민하고 속도감 있게 만들었다.
디테일을 놓치는 타인이 바보스럽게 느껴졌고, 속도감 있으면서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나를 뿌듯해했다.
어딜 가나 일을 빨리 배웠지만, 결코 내편을 만들지는 못했다.
다시 현실로 와서
내가 메뚜기와 부딪치는 부분도 속도이다.
그것이 산악부와 군대에서는 유용했을지 모르나
함께 여행하기 위해서는 나의 속도를 줄이고
계산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직관이 발달한 나는
얼핏 봐도 이게 될 일인지 , 안 될 일인지 단박에 감이 온다.
그것을 참고 인내할 자신이 없어 자꾸 참견하려 하고 못마땅해했다.
나는 훨씬 더 좋은 대안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지름길이지만 가시밭길이다.
천천히 둘러가는 길도 있는 법이다.
우리의 여행은 속도전이 아님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Slow walker는 머리와 걸음도 느려져야 한다는 것을
나는 얼마나 더 느려져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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