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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밤 10시. 사파가는 버스를 타고 이동 중이다.

하노이 올드타운 근처에 머무는 여행자라면 보통 호텔로 미니버스가 픽업을 하러 오고

사파 익스프레스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 숙소를 잡을 수록 대기 시간이 짧아진다.

아니라면 미리 픽업 당해서 다른 사람을 모두 태울 때까지 시내를 돌면서 기다려야 한다.

비닐봉지를 받아 신발을 넣고 자리에 가면 생수 한 병과 물티슈 한개가 놓여있다.

좌석은 지정제인데, 일찍 예약하면 앞자리를 주는 듯 하다.

 

어제 늦게 예약을 했더니 제일 끝 화장실 옆 자리로 배정받았다.

다른 자리는 모두 평평한데 끝 자리는 머리 두는 부분이 15도 가량 올라와있어 불편하다.

안그래도 좁은 좌석이라 다리를 쭉 뻗을 수 없는데 여러모로 힘든 여정이 될 것 같다.

잠깐씩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는 수밖에.

 

낮에 3만보 이상을 걸었더니 아무리 불편해도 잠이 쏟아진다.

덜컹대는 버스에서 머리를 쿵쿵 부딪쳐서 눈을 떠보면

차라리 눈을 감는게 나을 정도의 고속 드라이빙과 과감한 코너링이 이뤄지고 있었다.

무신론자가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순간이다.

 

새벽 한 시. 잠시 휴계소에 들린 틈을 타 일어나 스트레칭을 한다.

입은 모래알을 씹은 듯 텁텁해서 나눠준 생수로 가글을 하고

물이 나오지 않는 버스 세면대를 대신해서 남은 생수로 손을 씻었다.

이내 버스는 덜컹거리는 소음을 내며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새벽 4시 반. 버스는 사파에 도착했지만 아직 어둠이 깔려있다.

6시 정도 까지는 버스에서 누워 있을 수 있다.  그동안 열심히 숙소 검색을 해본다.

와이파이를 찾아해매는 영화 기생충의 가족 처럼

 

비도 오고 짐도 많아서 택시를 탔다.  쨍쨍한 날씨라면 걸어갈 법한 거리인데

6만동을 부르길래 5만 동으로 깎았다. 그것도 많이 준 것 같긴 하다.

 

비온 뒤 사파는 정말 맑았다.

예전에 방문했을 때는 하루도 맑은 날이 없었는데

오히려 우기 때 방문하니 비온 뒤에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내려놓고 사파 시장 구경을 했다.

아침으로 로컬 푸드에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입맛에 맛지 않아 실패했고

시장에서 망고스틴 500g을 사서 먹었다. (알고보니 마트에서 더 싸다는 불편한 진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더 걷고 싶었는데 며칠 제대로 못잤던 탓에 몸이 힘들다.

잠시 자고 나오기로 했다.

 

산과 호수가 한 눈에 보이는 호텔에서

맑은 하늘과 선선한 바람을 느끼면서 스르르 잠이 든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잠을 깨보니

이럴 리가 없는데 몸 상태가 너무 개운하다.

 

오후 4시 쯤 설렁설렁 카메라만 챙기고 나와서

캇캇마을 초입 까지 이어지는 판시판 주변 거리를 걷다가 지는 석양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황홀하며 쓸쓸한 감정.

매일 석양을 바라보는 것이 여행지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