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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덜 깬 채로 베란다 밖을 내다본다.

차를 타고 가는 학생들, 공사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인부들, 일찌감치 가게문을 여는 과일가게

분주하게 아침을 준비하는 사람들.

여행자도 오늘의 여행을 준비한다.

비슷한 일상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여행의 방식도, 그 여행을 기록하는 방식도 제각각 이겠지만

내 경우에는 카메라로 이미지를 수집하는 것이 기억을 기록하는 방식이므로,

빛이 좋은 순간에는 망설이지 않고 무작정 나가야 한다.

 

아침 일찍 시내를 나가기로 했다.

카메라만 들고 가도 되지만, 혹시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해서 늘 우비를 챙긴다.

나야 젖어도 괜찮지만 전자제품은 아니기 때문에

썽태우를 탑승하며 시내로 가는 도중 가방 옆에 꽂아 두었던 우비가 도로 위를 굴러 떨어졌다.

여행 중 가져온 물건 중 가장 잘 샀다고 생각하는 다소 비싸고 가벼운 우비였다.

탑승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벨을 눌러 차를 세웠다.

이미 급경사 진입구간이라 한참을 다시 걸어 올라가서 다행히 수거했다.

 

덕분에 차비만 날리고 30분에 한대꼴인 썽태우를 다시 기다렸다.

30분 조금 지나서 다시 탑승하니,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어제 피피섬 투어를 같이 했던 스페인 노부부였다.

물론 어제도 인사 정도만 한 사이였지만 다시 인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우비를 흘리지 않았으면 놓쳤을 인연.

여행은 예측 불가능 함에서 오는 우연과 인연들이 재밌다.

 

올드타운에서 맛있다는 커피집을 가서 커피를 마셨으나 속이 좋지 않다.

정말 커피는 안 맞는 체질인가 보다. 

경미한 멀미 증세처럼 조금 어지럽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메뚜기가 아침에 나가면서 한식을 먹자고 했었는데

대형 마트의 김치를 보고는 한식을 포기하는 대신 김치를 골랐다.

베트남 K 마트에서는 훨씬 저렴한 가격에 많은 양의 김치가 있었는데 여기는 없는 듯하다.

500g의 김치가 만원 정도니 비싼 편이다.

김치를 갈망하는 메뚜기를 외면할 수 없어, 내친김에 장을 봤다.

 

원래는 주말에 하는 야시장을 들리려고 했는데, 사다 보니 짐도 많고 해서

다음 주에 영화를 보러 오면서 다시 들리기로 했다.

 

카론 비치로 돌아가는 썽태우를 타고 숙소에 오니 5시.

잠시 30분 쉬다가 카론 비치로 향했다.

저물어 가는 석양을 마주 보며 20분 정도를 걸으면서

오늘은 어제보다 더 석양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하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은 아니다.

과거 필름을 쓸 때는 돈이 아까워 그랬던 습관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인지

한 장 한 장 곱씹어서 찍는 편이다 보니 하루 30장 찍기도 어렵다.

 

그중에서 추려 내다 보면

그날의 기분에 따라 별것 아닌 것이 평소보다 좋게 보이기도 하고,

아무리 찍어도 남에게 공개할 사진을 한 장을 못 내놓는 경우도 있다.

그 날은 밥값을 못한 것 같고, 하루를 공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바다에 나가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돌아오는 어부의 심정이 이러할까.

오늘은 맘에 드는 사진이 몇 장 있어서 다행이다.

어디까지나 나만 만족할 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