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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세계여행 D+161 "오토바이 펑크난 날"

4번얼룩말 2019. 11. 8. 22:32

메뚜기가 윤라이 전망대에서 일출을 보고 싶다고 했다.

며칠간 날씨를 봤는데 계속 비라고 되어 있어서

오토바이를 빌리지 않았었는데 정작 비는 안 왔었다.

 

오늘 날씨를 보니 비 소식이 없길래

온천에서 입을 수영복도 챙기고

새벽에 운전해야 하니 손전등도 챙기고

남은 간식과 음료수도 챙겼다.

 

아침잠 많은 메뚜기가

투어가 아닌 자발적으로 일출을 보겠다는 것은 큰 결심이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고 

새벽 공기를 가르며 오토바이 타고 씽씽 달렸다.

 

포장도로에서 비포장 도로로 접어들자

오토바이가 이상했다.

덜컹거림이 심하다고 해야 하나?

어제 비포장도로에서 급경사를 갈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윤라이 전망대로 가는데

주변 아저씨들이 오토바이를 가리키며 뭐라고 한다.

 

즉각 세워봤더니 뒤쪽 타이어가 펑크 나있다.

언제부터 펑크가 난 것인지 모르겠다.

어제 뱀부 브릿지의 도로가 안 좋았던 것일까

이 상태로는 더 이상 올라가기란 힘들었다.

 

주변 아저씨들이 택시를 타고 올라가라며 왕복 300밧이라고 했다. 

비싼 가격에 그냥 포기하고 돌아선다. 

많은 생각이 더해진다.

 

조금 더 비싼 오토바이로 빌릴 것을 그랬나.

숙소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펑크 비용은 얼마쯤 청구될까

 

새벽부터 분주하게 준비했던 많은 것들이 허사가 되었다. 

우리와는 인연이 아닌가 보다.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숙소로 가는데

아까보다 덜컹거림이 심해졌다.

최대한 저속으로 기어가다시피 달려갔다.

 

숙소에 도착하니 7시도 채 안된 시간이다.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와서 선잠을 잤다.

그 사이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어차피 일출이 뜨지 않으므로 택시를 안 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 오랫동안 비가 내렸다.

오토바이를 반납할 때까지도 비는 여전히 이어졌다.

일기예보가 정말 더럽게도 안 맞는다고 생각한다.

 

오토바이를 반납하러 가니

펑크가 났다며 150밧을 요구한다.

100밧에 렌트를 했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그 오토바이 때문에 투어도 못하고

꽉 채운 기름은 그냥 남 좋은 일만 하게 된 셈이다.

그런 오토바이를 빌려준 업체에도 짜증이 났다.

뭔가 항의를 해볼까 하다가 

싼 게 비지떡이구나를 여실히 느끼며 돌아섰다.

 

다소 우울한 상태로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메뚜기가 또 참지 못하고 긁는다.

기분 안 좋은 상태로 있을 거면

원래 가려던 한식당을 가지 말자고 한다.

 

메뚜기가 먹고 싶어 했으므로

그래도 갈 생각이었는데 재차 나를 쪼아댄다.

그럼 가지 말자라고 말하고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된다.

 

밥 먹는 동안

비 오는 거리를 걸으며 숙소까지 오는 내내 

그리고 해가 어둑해져 저녁을 먹을 때까지

우리는 별 말이 없었다.

 

사람마다 감정은 다르기에

공감이나 이해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내가 화나는 지점은 내 감정을 꾸짖는 메뚜기의 태도다.

사소한 것으로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데

왜 그런 것으로 기분 나빠하냐는 태도다.

그런 교조적인 태도가 맘에 안 든다.

 

밥 생각이 없었지만

그래도 저녁때가 되니 같이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피자를 시켰는데 엄청 큰 피자가 나왔다.

해피아워의 반값 할인이 없었더라면 먹지 않았을 비싼 피자다.

 

기대만큼 맛이 있지는 않았다. 

야시장을 어슬렁 거리는 개 세 마리가

눈망울을 그렁거리며 쳐다보길래 조금 주었더니

첫 번째 개는 입이 고급이라 먹여줘야만 먹었고

두 번째 개는 한 번 먹더니 제 입맛이 아닌지 돌아갔고

세 번째 개는 딱딱한 도우까지 씹어먹더니 어서 안 주냐며 앞발로 툭툭 친다.

 

우는 놈 떡 하나 더 주는 게 세상 이치라

세 번째 개는 거의 1조각은 혼자 먹은 듯하다. 

그러더니 접시를 치우자 가차 없이 떠나버렸다.

솔직하고 당당하고 쿨하기까지 하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아까의 감정이 다소 누그러졌다.

빠이의 마지막 날을 이렇게 보내서 아쉽다.

태국을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새로운 곳에서는 새로운 마음을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