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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배낭여행을 했던 15년 전과 비교하자면 확실히 편리해졌다.

어느 숙소가 깔끔한지 가격은 얼마인지, 어디 식당이 맛있는지 맛없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 스마트한 세상.

그렇기에 처음 여행 계획을 세울 때부터 온도차가 있었던 것 같다.

가이드 북 하나만 의지해서 갔던 다녔던 나의 아날로그 여행에 견주어

이번 여행을 계획한 기간만큼 준비의 기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1년 여행이면 최소 1년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반면 메뚜기는 생각이 달랐다.

이렇게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 얼마든지 현지에서 해도 충분하다는 식이였다.

내 방식은 구닥다리처럼 보였나 보다.

결국 불안한 사람이 우물을 파게 되어있었고 난 혼자 루트를 계획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언젠가는 터질 큰 불안이었다.

여행지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루트를 수정하는 경우야 매우 흔한 일이지만,

그 외에 상대방이 맘에 들어하지 않는 경우에는 난감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무더위에 맥도날드로 피신했을 때,

앞으로 루트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대답을 들었다.

"여기 다 갈 거야?" 그것은 몇 번이나 상의한 루트이기도 했다.

그 말의 함의를 파악한 나는 가보고 싶던 몇 군데를 빼고 유명한 곳 위주로 즉각 수정했다.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계획단계에서 함께 참여해서 말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어제, 퐁냐에서 다낭으로 이동했다.

새벽 4시 차를 타면 직행이지만 아침 7시 차는 완행이기 때문에 2시간이 더 걸린다.

새벽부터 움직이는 게 번거로울 것 같아서 7시 차를 선택했다.

중간에 후에 라는 도시에 들려서 점심을 먹은 시간까지 해서 8시간 정도 걸렸다.

장시간 이동은 서로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것을 알기에 불안했다.

 

숙소는 신축 호텔이라서 저렴하고 깔끔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낸 숙소 중에서는 최고로 좋은 곳이었다.

다만 유명 관광지가 있는 다낭 시내와는 6km 정도 거리가 있었다.

왕복 택시비만 200,000 VND.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 별거 아니라 생각될 수 있지만

베트남에서 식사 한 끼 정도는 할 수 있는 , 더구나 배낭여행객의 입장에서는 무시 못할 금액이었다.

더구나 다낭은 5일 정도 있을 예정이었다.

 

순간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가깝지만 더 열악한 숙소를 더 비싼 값에게 잡는 것이 현명할지

아니면 조금 아끼고 매일 택시를 타고 이동할지

애초에 스마트 폰이 없었다면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근처 숙소 몇 군데를 두드려 일단 방부터 구했을 것이다.

선택이 많아진 세상에는 선택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그리고 고민과 결정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내 숙소 선택이 거리가 너무 멀어 미스였다는 생각이 들자 우울하고 예민해졌다.

이런 것으로 소모되는 에너지가 싫었다.

머리 속으로 다시 해야할 일들이 떠올라서

옆에서 메뚜기가 다낭에 대해 뭐라고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계속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문제는 용다리에서 터졌다.

분명 토요일 / 일요일 밤 9시에 한다고 써있어서

그것을 보려고 근처에서 2시간 전에 밥먹고 차 마시고 삼각대까지 세팅하며 기다렸지만

9시 30분이 되도록 아무 반응이 없었다.

피곤해진 나는 용이 하늘로 승천한들 이미 관심이 없어졌고 얼른 가자고 재촉했다.

그 와중에 저렴한 거 타겠다고 그랩을 부르다가 핸드폰 배터리는 없고

택시는 잘 안잡히고

결국 예민해진 우리는 서로를 향해 가시를 내뱉었다.

 

혼자 루트를 수정하고,

우리의 예산 범위내에서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금액대의 숙소와 식당을 정하고,

교통편을 예매하고, 못하는 영어로 열심히 필요한 것을 설명하고

숙소 와서는 정산 맞춰보며 잠도 제대로 못잤던 구차한 감정들까지 함께 배출했다.

우리는 "함께"  여행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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