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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평화로운 하루였다.
적어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살짝 차가운 공기와 적당히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신시가지 거리 사이로
구수한 군밤 냄새가 퍼치는 아침이었다.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카이막을 먹고 그 맛에 꽤나 만족했다.
갈라타 타워에 올라가 드넓은 이스탄불 시내를 내려다보았고
트램을 타고 그랜드 바자르와 블루모스크를 구경하기도 했다.
톱카프 궁전으로 가는 공원 사이의 푸르른 산책로도 좋았고
바다로 이어지는 길에서 맑은 하늘과 투명한 바닷물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갈라타 다리 밑에 있는 고등어 케밥 집의 케밥도 무척 맛있었다.
혹시나 입맛에 안 맞을까 봐 1개만 시켜서 나눠 먹었는데
내일 다시 와서 먹자는 약속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돼버렸다.
케밥을 먹고 석양이 질 무렵
사진을 찍으려고 메뚜기에게 잠깐 서보라고 했다.
근처에 있는 할머니 셋이 자리를 피했지만 나는 괘념치 않았다.
메뚜기는 오전부터 내내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신경이 쓰인다고 투덜댔다.
그 사람들이 슬금슬금 피하는 것 까지야 어쩌겠는가
신경 쓰지 말자고 여러 번 말했지만
메뚜기는 계속 우리의 여행을 , 내 기분을 망치고 있었다.
제발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자고 짜증을 냈다.
그럼 어떡하라는 이야긴지, 숙소에만 처박혀 있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인지
이왕 온 거 우리의 여행을 즐기면 되는 것 아닌가?
그동안의 짜증이 한꺼번에 폭발해서 나 혼자 숙소로 돌아왔다.
내가 숙소로 오고 세 시간쯤 뒤에 메뚜기가 돌아왔다.
나는 메뚜기에게 시시하고 사소한 이유로 이별을 통보했다.
더 이상 지치고 힘들어 함께 여행을 못할 것 같다 말했다.
그동안에 조금씩 쌓인 시시하고 사소한 이유는
안나푸르나 보다 높았고, 피피섬보다 깊었다.
함께 여행을 하길 바랬고,
우리의 여행을 하길 바랬으나
점점 지치고 체념이 가득했다.
늘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느라
정작 옆에 있는 내 기분을 살피지 못하는 메뚜기의 눈치 없음이 싫었다.
한 번쯤은 낭만적으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여행을 함께 떠났다.
그러나 실패였다.
내가 다 망쳐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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