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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일찍 전망대를 올라가서 피피섬을 내려다 보고

내려와서 시장에서 맛있고 저렴한 팟타이를 먹을 때만 해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피피섬이었다.

 

오후 세 시 반쯤 해변을 걷다가

카약이 있길래 한 번 타볼까 싶어 탔다.

원숭이 해변을 갔다 오는 코스라는데

1시간은 너무 짧은 것 같아 2시간을 하겠다고 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대단히 큰 실수였다.

 

원숭이 해변까지 10분 정도면 갈 수 있다는데

우리는 천천히 20분 조금 넘게 도착한 것 같다.

해변에서 잠시 쉬면서 원숭이도 보고

허리춤까지 오는 곳에서 수영도 하며 놀았다.

 

생각보다 시간이 꽤나 남아서 다시 카약을 저어 가는 도중

갑자기 카약이 뒤집어졌다.

이런 순간에는 무방비 상태라 너무나 당황했다.

다행히 둘 다 구명조끼 입고 있었다.

우선 카약이 뒤집힌 것을 바로 잡아야 하는 게 우선인데

둘 다 초보라서 처음에는 무식하게 들어 올려서 뒤집으려고 했다.

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한 번은 가까스로 뒤집었다.

그다음은 타는 것이 관건인데 보트에 물이 차 있어서

올라타면 곧바로 뒤집히기 일쑤였다.

 

서너 차례 반복하니 힘이 계속 빠졌다.

해가 저무는 시간이라 주변에는 카약 타는 사람들도 없고

보트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카약을 잡고 한 팔로 저으면서 앞으로 나갔다.

그러나 허우적 대기만 할 뿐 계속 제자리만 맴돌 뿐이었다.

 

아무리 구명조끼를 입었다 한들

망망대해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게 되자 살짝 공황상태가 왔다.

메뚜기에게 먼저 가서 구조 요청을 하라고 했다.

메뚜기가 점점 멀어지면서 나는 고립감에 더욱 불안해졌다.

그야말로 망망대해에 나 혼자 버려졌다.

한 손에는 카약과 패들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연신 휘저어봤지만

소용없었다.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다.

허우적 거림도 더 이상 의미가 없어서 둥둥 떠 있었다.

 

영겁 같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한 사람이 카약을 타고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관광객이 혼자 카약을 타고 오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 구해주려고 했다.

그의 이름은 샘이었다.

나중에 메뚜기 말을 들어보니

샘을 발견하고 내가 수영을 못하니

나부터 구해주라고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샘과 함께 내 카약을 뒤집었다.

이제 카약 뒤집는 것은 능숙해졌다.

거꾸로 뒤집힌 카약을 올라타려고 하면 쉽게 배가 뒤집혔다.

하지만 물이 빠지지 않아서 올라가도 금방 다시 뒤집혔다.

 

샘은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상태여서

그가 나를 구해주다가 도리어 위험에 빠지지는 않을까 불안했다.

계속 시도를 해도 안되자 샘이 자기 카약에 끈을 묶어서 가자고 했다.

물속에 둥둥 뜬 채로 두 개의 카약을 끈으로 묶었다.

묶는 데는 성공했으나 무게 때문에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를 않는다.

샘도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내 호흡도 가빠지고

정신이 점점 흐려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때마침 생선을 잡고 돌아오는 보트가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배에 올라가니 어지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샘은 보트에 내가 올라가는 것을 본 후에야 돌아갔다.

보트를 타고 가니 우리에게 카약을 빌려줬던 사람이

보트 주변으로 왔다.

시간이 한참 지나도 안 와서 우리를 데리러 왔다고 한다.

인명사고가 나면 자신도 감옥에 간다고 했다.

원숭이 해변 근처를 벗어나면 위험해서 카약을 타고 가면 안되었는데

무지는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고, 타인에게도 엄청난 민폐를 끼쳤다.

미안했다.

 

보트를 타고 조금 가니 메뚜기가 아직도 헤엄치고 있었다.

메뚜기도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다리에 쥐가 날 뻔했다고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털어

보트를 태워준 그들에게 턱 없이 부족한 보상을 했다.

 

샘에게도 특별히 밥이라도 사주고 싶었으나

이미 어디론가 가버려서 찾을 수가 없었다.

내일 떠나기 전에라도 마주칠 수 있으면 좋겠다.

 

두 번 다시는 카약을 타지 않을 것임을 맹세하고

살아 돌아온 것에 대해 모든 신들에게 감사했다.

다소 놀란 것 빼고는 나와 메뚜기 모두 이상 없었다.

이제 조금 진정을 하고 숙소에서 쉬는 중이다.

오늘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 밤이다.